[2024. 1월호. 월간방배동] 맛알못에서 셰프까지

조한나
2024-01-16 15:38:00
[방배문예] 맛알못에서 셰프까지

서초구 소식지에서 <오늘의 아빠요리>라는 강좌에 대해 알게 되었고 와이프의 강권에 등떠밀리듯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평상시에 딸내미로부터 '맛알못'이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고 칼질도 한번 해본 적이 없었지만 내안의 숨겨진 재능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호기심도 발동하면서 재미삼아 한번 참여해 보자 하는 생각이었지요.





첫날 배운 요리는 갈치조림! 강사님께서 자세히 정리해 주신 레시피를 보면서 30여분 간의 시범 요리과정을 지켜보면서 오호라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각자의 테이블로 가서 직접 자신의 요리를 해야 하는데 너무도 쉬워 보였던 감자와 무를 써는 것부터 '엇 생각과는 다르군' 생각이 드는 순간 날카로운 칼날이 제 손톱을 스치면서 등골에 땀이 주루룩 흐르더라구요.

"탁탁탁 슥슥슥" 다른 수강생분들의 익숙한 칼질 소리에 점점 작아지는 제 자신을 느끼며 '나는 왕초보, 천천히 가자' 라고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레시피와 제가 적은 메모를 찬찬히 보고 느림의 미학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차근차근 조리과정을 따라갔고 아무튼 반쯤 유체이탈한 상태로 요리를 완료했습니다. 그래도 나의 생애 첫 요리를 완성했다는 묘한 자부심이 뿜뿜하는 느낌도 있었지요.

"수고하셨습니다~" 강사님의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완성한 요리가 식을세라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여우같은 와이프의 맛평가가 어떨까 기대반 설렘반 하면서.

"생각보단 그럴싸 하군!" 겉모양을 본 심사위원(?)의 첫평가. 본평가를 위해 각자의 접시에 갈치와 감자, 무를 한토막씩 올려두고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저 '맛알못'은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하면서 와이프의 눈치를 보는데 "무와 감자에 간이 잘 배었네" 일단 긍정 평가. 그런데 갈치 한 토막을 다 먹기까지 고기맛에 대한 평가가 없기에 첫술에 배부르랴 스스로를 위로하는데 와이프가 갈치 한 토막을 더 갖고 오는 것이 아닌가. 단숨에 갈치 두 토막을 해치운 와이프는 "괜찮네"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대성공!! 점점 자신감이 올라오면서 요리강좌 시간이 좀더 재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징어 해물짬뽕! 첫달 요리강좌 중 가장 기대가 되었던 요리 주제입니다. 집에서 직접 해먹은 경험이 없었기에 심사위원 와이프도 그 레시피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그 요리! 두반장과 치킨파우더라고 하는 처음보는 양념과 조미료를 사용했는데 배민으로 시켰던 짬뽕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맛이었습니다.

"엇 신기하네" 하면서 와이프는 레시피를 기웃거리기 시작했고 저는 와이프에게 저의(?) 마법같은 비법을 조금씩만 풀어주었지요. 주말엔 동탄에서 직장생활하는 맛잘알 딸내미가 집으로 옵니다. 제게는 와이프가 1심 판사, 딸내미가 2심 판사라 할 수 있겠는데요. 무난하게 1심을 승소한 제 해물짬뽕은 2심에서도 무난히 승소할 수 있었습니다.

"아빠가 다음 번엔 차돌짬뽕 해줄께~" 예전에는 판결을 기다리는 피고인의 느낌으로 맛평가를 기다리곤 했는데 이제는 마치 셰프가 된 느낌으로 "아빠가 다음엔 뭐해줄까?" 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제 요리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들에 귀를 기울이며 개선점을 찾기도 하고, 좀더 어려운 요리에 도전도 해보고 싶은 욕구도 생깁니다.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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